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II
서문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될 경우에만 말해야한다; 그리고 극복해낸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 다른 모든 것은 잡담이고 '문학'이며 교양의 부족이다. 내 저서들은 오직 나 자신이 극복해낸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 거기에는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한때 나의 적이었던 나, 가장 나 자신과 똑같은 나, 아니 그뿐만 아니라 좀더 자랑스러운 표현이 허락된다면 가장 독자적인 존재인 '나'가 있다. 사람들이 추측하듯이 :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내 아래에 두고 있다...... 그러나 체험한 것과 살아남은 것, 나중에 그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나 자신의 사건이나 운명에서 껍질을 벗겨내고 채굴하여 들추어내고 '묘사하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욕망이 일어나기까지는 나는 항상 시간, 회복, 먼 거리, 간격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모든 저서는, 물론 중요한 예외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선생님이 말했던 내 문체의 특성, 참고할 것.
        - 과거의 기록 조각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까
예전 강의때 푸코의 표현 "나는 시간적인 흐름이 아니라 지층의 단면을 탐구하는 언어의 고고학자가 되려고한다"




...즉 '현실성'이라는 가장 강렬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저서조차도 그 배후를 염두에 두고 볼 때는 나의 항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험하고 고요한 바다에 있었던 과거의 한 시기에 대한 경의와 감사였다...... 실제로는 하나의 분리이며 결별이었다.

글로 써낸다는 것은 하나의 배앝음, 배출이고 상처라면 그것의 치유이고 아픔이라면 그것의 수용이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의 일들에 대해 쓴다면 조악하거나 유치하고 좁은 일기장이 되기 쉽다. (아이디어나 감각에 대한 기록은 예외로하고) 약간의 시간과 거리가 흘러 감정이 무르익거나 산화되어 진정되고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될 때가 이상적이다.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는 한 분명 그러한 상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 아직 '관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찰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멀리서 관찰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책의 46쪽에는 "관찰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비밀에 찬 적대 관계, 즉 서로 마주보는 적대 관계이다"라는 말이 있다.

울산
기숙사
룸메이트
지나치게 가까워 상처가 되는 일들 - 가까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당한 거릴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관계도 존재한다.


약간의 냉담함; 그 냉담함은 심리학자가 자신 아래에 그리고 배후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것들을 나중에서야 스스로 확인하고 동시에 바늘로 확실하게 찔러보는 것이다: ㅡ 그때 심리학자가 손가락에서 그리고 언제나 손가락에서만 피를 흘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예리하고 아슬아슬한 작업을 할 때 때때로 손가락에서 피가 조금 흘러나온다고 해서 놀랄 일이 무엇이겠는가?

가끔 놀랄만큼 감각적인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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